우리나라에서는 특별히 인상이 강한 느낌은 아니지만
꾸준히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는 맥주, 칼스버그(CarlsBerg).
덴마크에서는 국민 맥주로 알려져 있고 유럽의 유명한 축구팀, 리버폴의 오랜 후원 기업이기도 하다.
이 맥주이자 회사는 사실상 라거의 대중화에 앞장선 기업이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한 나라의 예술,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활동하고 있는 곳이다.
1835년, 크리스티안 야콥슨의 아버지가 사망하며 양조장을 물려받게 된다.
하지만 야콥슨은 기존의 에일을 만들던 양조장이 아니라 라거를 만들고 싶어 했고,
1847년에 라거를 위한 양조장을 새롭게 건설했다.
이 양조장의 이름을 자신의 아들의 이름인 칼(Carl)과
양조장이 위치한 언덕을 뜻하는 단어 베르그(Bjerg)를 합친 칼스버그로 결정*한다.
*여기에 관련된 야콥슨 부자의 아이러니한 법정 공방이 있었는데
바로 칼스버그라는 이름의 사용권에 대한 싸움이었다.
크리스티안 야콥슨은 아들, 칼을 독일과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로 맥주 기술을 배우라며 유학을 보낸다.
약 4년간 해외에서 맥주 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칼은 배워온 영국 비어, 즉 라거를 만들기를 원했다.
하지만 크리스티안이 칼에게 새로운 양조장을 지어주고 그곳에서 포터와 에일을 만들라고 지시하게 되고,
칼은 여기에 반발하며 자신의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라거를 만들기 위한 시설을 새롭게 짓는다.
칼이 돌아오고 크리스티안이 아들에게 새로운 양조장을 준 당시가 1871년이었고
1882년, 새롭게 지어진 곳을 뉴 칼스버그 양조장이라고 이름 붙인다.
자연스레 크리스티안이 운영하는 양조장은 올드 칼스버그 양조장이라 불리게 되었다.
크리스티안은 칼이 만드는 맥주들과 빠르게 성장하며 출하량을 늘리는 뉴 칼스버그를 대상으로
칼스버그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게 된다.
자신의 생각대로 하지 않는 아들과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들 칼은 오히려 칼스버그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이지 않냐,라고
법정 공방을 이어갔고 결국 법정은 칼의 손을 들어준다.
결국 두 개의 칼스버그가 생기게 되었고, 이 둘이 다시 합쳐진 것은 크리스티안이 죽고 9년 후인 1906년이었다.
그의 신념은 가격과 상관없이 품질 좋은 맥주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다른 브루어들이 불만을 가질 만큼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맥주를 공급하며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그의 신념에 따라 저렴한 가격임에도 맥주의 맛은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야콥슨은 종종 당대 유망하거나 이미 유명한
여러 과학자, 시인, 작가, 예술가들(덴마크 대표 작가 안데르센도 포함)을 불러 저녁 만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들에게 사회적, 예술적, 문화적 의견들을 듣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으며 지금의 칼스버그 재단을 만들 기초를 다지게 된다.
(애초에 예술과 문화, 사회적 문제 등에 관심이 많던 그였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활동이었을지도 모른다.)
맥주 시장을 장악하며 사업의 큰 성공을 거둔 크리스티안 야콥슨이 칼스버그 재단을 세우고
가장 먼저 한 것은 맥주에 사용되는 효모에 대한 연구였다.
앞서 맥주의 역사에 대해 설명할 때 해당 내용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혹시 궁금하다면 읽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2023.05.21 - [맥주/역사] - 맥주의 역사 ④ - 라거의 유행
파스퇴르의 효모 이론에 대한 믿음이 있던 야콥슨은
이를 적극적으로 후원했고 그 결과 라거를 만들 때 사용하는 특정 효모만을 추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 효모를 특허권 등록을 하지 않고 다른 양조장에 나눠주었다고 한다.
이 효모의 학술명은 파스퇴르 효모. 하지만 맥주 업계에서는 존경의 의미를 담아 칼스버그 효모라고 불리고 있다.
칼스버그 재단은 이뿐만 아니라 지금의 pH 판별에 대한 연구도 진행,
산성도와 염기성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여 화학계에 큰 영향을 준다.
과학분야 외에도 야콥슨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예술과 문화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는 수많은 수집품을 사들였는데 주로 고대 그리스 시대 혹은 로마 시대의 조각상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불에 타 전소된 성을 재건축하는데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하기도 했으며
그 외의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을 위해 많은 후원과 기부 활동을 계속했다.
그의 아들 칼 또한 아버지를 따라 수많은 사회 공헌 활동을 이어갔다.
평생을 모아 온 고대 조각상들과 미술품, 프랑스의 젊은 화가들의 작품, 이집트의 예술품 등
아버지를 뛰어넘는 방대한 범위의 예술품들을 모두 국가에 기증,
기존에 존재했던 박물관이 부족해서 새롭게 증축해야 할 정도의 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칼스버그 재단에서 크리스티안이 설립한 것은 과학분야이고
예술 문화 분야에 대한 재단은 바로 칼이 세운 것이었다.
창업자의 정신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칼스버그의 수익 중 일부는 여전히
칼스버그 재단에 기부되고 있으며 덴마크의 사회, 예술, 문화, 과학 등 다방면에 후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젊은 과학자들을 위한 지원과 친환경을 위한 연구에 대한 지원 등
과학분야에 특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 칼스버그는 2017년 포브스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회사에서
맥주회사 중에서는 유일하게 최상위권인 6위에 선정되었다.
앞서 설명한 수많은 활동들이 인정되어 이런 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어째서 홍익인간 맥주인가에 대한 설명이었다면,
맥주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현재는 덴마크식 필스너로 익숙한 칼스버그지만 칼스버그가 처음 생겼을 때, 필스너를 생산하지 않았다.
지금의 투명한 페일 라거를 생산한 것은 1904년, 칼 야콥센이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 칼스버그 맥주는 당시 생산되는 대부분의 라거들과 같이 어두운 색의 라거였다.
1800년 후반에 이미 필스너 스타일의 맥주가 유행했다고 하는데
1904년이면 꽤 늦은 것이 아니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그만큼
그 시대에는 투명하고 밝은 색의 맥주를 만들기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이때 생산되었던 필스너가 덴마크 황실에 공식으로 공급되는 맥주가 되며 덴마크 시장을 휩쓸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황실 공식 맥주라는 의미를 가진 왕관을 맥주 디자인에 넣었다.
맥주의 맛은 전체적으로 가벼운 목 넘김과 적절한 탄산감,
톡 쏘는 쓴맛이 첫 입에 느껴지고 뒤로 갈수록 구수하면서 약간의 단맛이 나는 곡물의 맛이 느껴진다.
라이트 한 바디에 비해 첫 입의 쓴 맛이 임팩트가 강하다 보니 호불호가 갈리는 편.
그리고 하이네켄에 비해 느껴지는 풍미는 약한 편이라 애초에 묵직한 맥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별로라는 평도 많다.
하지만 황실에서 공식으로 인정한 맥주인 만큼 전체적인 밸런스 굉장히 훌륭하다.
풍부하고 부드러운 거품과 적절한 탄산감, 전체적인 쓴맛과 단맛의 밸런스,
끝에 살짝 풍기는 은은한 홉의 아로마*까지 프리미엄 라거라고 느낄 수 있는 디테일이 있다.
*사람에 따라 시트러스한 향이 느껴진다고 하는 이도 있다. 필자는 느끼지 못했다.
조사하면서 알게 된 칼스버그의 다른 맥주 중 지금 우리나라에는 수입되지 않지만
"칼스버그 1883"이라는 이름의 맥주가 존재하며 1883년에 최초로 배양에 성공한 라거 효모를 이용하고
당시 생산되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만들었다고 하는 다크 라거가 있다.
만일 덴마크에 가게 될 일이 있다면 한번 구매해서 먹어보고 싶은 맥주다.
축구팬이라면 리버폴 FC의 역대 선수 들 중 각 연도의 베스트 플레이어의 이름을 딴
기념 맥주들도 있는데 이 것들을 구해서 먹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아, 말이 나온 김에 먹어보고 싶은 맥주 리스트를 작성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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