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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 [맥주/역사] - 맥주의 역사 ①
2023.05.12 - [맥주/역사] - 맥주의 역사 ②
홉의 사용으로 맥주의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현실은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많이 존재했다.
중세 암흑기*와 십자군 전쟁을 포함한 나라 간, 도시 간의 크고 작은 전쟁, 대대적인 전염병까지.
이러한 문제로 홉이 제대로 사용되기까지 수백년이 걸렸다.
[맥주 바이블]에서는 이를 "홉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처럼 "홉 혁명"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갈 때까지 수백년이 걸렸지만
산업화는 1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일어났다.
*5~15세기의 유럽 지역, 르네상스 문화가 꽃피기 전을 일컫는 말. 문학, 문화, 예술 등 다방면으로 발전이 억제되던 시기
18세기 초, 영국은 한자동맹*이 끝나며 발생한
빈 공급자의 자리를 이어받게되며 세계 대표 맥주 수출국이 된다.
당시 영국에서 만든 맥주는 버턴Burton이라 불린 맥주였는데
홉을 많이 첨가하여 높은 도수를 가졌고 수년 간 맛의 변질 없이 유지 되었다.
덕분에 수출하는 지역 또한 더욱 멀리 수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버턴 다음으로 지금도 익숙한 포터Porter가 만들어졌다.
이 맥주들은 영국에서 전 세계로 수출되었는데 러시아는 물론
호주, 아시아, 북아메리카까지 다양하게 수출되었다.
*발트해 연안의 섬 나라 혹은 도시와 독일 북쪽 도시 간의 동맹. 해상 안전과 공동 방어, 물류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수출 시장이 확대되면서 맥주를 생산하는 브루어리들의 몸집이 거대해졌다.
1300년대의 대형 브루어리들이 연간 2000배럴(1배럴 = 약 159리터),
18세기 중반의 대형 브루어들은 연간 5만 배럴 이상을 만들어냈다.
이후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 그 사이 약 110년동안 이루어진 브루잉 기술 혁신과 함께
산업 혁명으로 생산량은 이보다 더 많아지게 된다.
이때 일어난 발전이 지금까지 일어난 브루잉 기술의 발전보다 그 정도가 더욱 컸다.
바로 이 시기에 온도계, 비중계, 증기력, 냉각 기술이 만들어졌고
앞서 설명했던 맥주의 발전에 크게 작용한 마지막 한가지, 효모에 대한 발견이 이루어졌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은 1760년, 온도계였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매시*의 온도와 발효 중 온도가 중요했는데
온도계의 등장 이전에는 그저 손을 통한 감각으로 이를 조절해야 했다.
이를 통해 더욱 정교하게 맥주의 맛을 통일 시키고 실패하는 맥주가 적어졌다.
비중계(밀도계)는 1780년부터 사용되었으며
이를 통해 맥아즙이나 완성된 맥주에 설탕을 얼마나 넣을 지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비중계의 등장으로 작업 효율과 제조 기법을 개선할 수있게 되었는데
한 예로 런던의 브루어리에서 포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브라운 몰트*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를 페일 몰트*로 변경했다.
*매싱을 한 액체. 밀링(곡물을 갈거나 으깬 것)한 곡물에 따뜻한 물을 섞은 것으로 전분을 당분으로 변환시키 위해 하는 과정
*발아시킨 뒤 건조한 곡물을 몰트라 하며 브라운 몰트는 로스팅 한 몰트, 페일 몰트는 비교적 저온에서 건조하여 옅은 색의 몰트를 의미
1785년, 증기력이 사용되었다. 증기력은 말그대로 산업혁명의 영향이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그 많은 곡물들과 물, 맥주 원액들을 말이나 사람의 힘으로 옮겨야 했다.
그래서 많은 비용이 들었는데 이를 해결하고자 증기의 힘을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다른 효과를 보게되는데 바로 생산량의 증가였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공급되는 지역과 맥주의 생산량을 걱정할 필요 없어진 것이다!
이는 맥주 산업화를 더욱 촉진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스파징 공정과 함께
맥주 생산의 간소화와 비용의 절감을 통해 생산량이 더욱 높아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스파징 공정은 1780년대부터 사용되어 온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공정으로
매싱 과정이 끝나갈 때 곡물층Grain Bed에 물을 뿌려
맥아즙에 물을 흘려보내고 몰트를 헹궈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방법이 알려지기 전까지 수많은 브루어리들에서는 시간이 많이 드는
고된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한다.
*잔여 전분과 당분들을 씻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매싱 과정을 반복하는 단순하고 오래 걸리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1800년대, 즉 19세기에 들어서 파이프를 이용한 온도 조절을 도입했다.
그리고 1870년대에 들어서 냉각 기술이 개발되었고
이는 곧 날씨와 지하, 얼음의 도움이 필요 없어지게 되었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온도가 매우 중요한데 특히 여름에 만들 때는 굉장히 어려웠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영국 브루어리들이 큰 파이프 안에 냉수로 가득 채우고
그 안에 내장된 작은 파이프 속으로 뜨거운 맥아즙을 통과시켜
빠르게 발효에 적합한 온도로 낮추는데 성공한다.
냉장 기술이 생긴 이후로는 더욱 정확한 온도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파스퇴르가 효모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상태라
효모가 온도에 얼마나 예민한지 알려진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브루어리들은 이 효모를 최적의 온도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860년 이후, 파스퇴르*의 효모에 관한 논문은 지금까지 있었던 맥주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 논문의 발표 이전에도 효모에 대한 이해를 위한 연구는 수세기 동안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여전히 맥주의 발효 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맛의 차이, 신맛이 나는 이유 등)하지 못했다.
파스퇴르의 이 논문으로 맥주가 발효되는 과정과 라거가 유독 부패 문제가 적은 이유도 밝혀 냈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이 맥주의 발효에서 효모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일부 지역에서만 유행하던 라거(하면 발효 맥주)가
에일(상면 발효 맥주)이 지배하던 맥주 시장을 장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루이 파스퇴르, 1822년~1895년. 프랑스의 생화학자이며 많은 업적을 세워 세균학의 아버지라 불림
파스퇴르가 발표한 효모에 관한 논문의 요지는 당시 만연했던 자연 발생설*을
비판하며 미세균과 박테리아 등 다양한 미생물에 의해 음식과 음료가 부패하고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 전에도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였으나 이를 실험으로 증명해 낸 것이
파스퇴르였고, 계속되는 연구 끝에 저온 살균법(파스퇴라이제이션Pasteurization)*을 만들어 냈다.
이를 통해 맥주는 물론 우유와 와인 등 수많은 액체류의 살균을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맥주에서 신맛이 나던 것이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야생 박테리아와 효모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수많은 브루어리들이
이를 제거하는 과정을 추가하여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대부분의 곳에서 맥주의 신맛을 없앴다.
물론 신맛을 좋아하던 독일 북부와 벨기에는 신맛이 나는 맥주를 만들었으며
이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에일에서는 신맛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학설 중 하나로 생물이 원인(부모)없이 스스로 발생할 수 있다는 가설
*100ºC미만의 온도로 가열하여 액체 안 병원균, 부패균 등을 사멸 혹은 개체수를 줄이는 살균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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