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맥주/역사

맥주의 역사 ② - 유럽의 맥주

전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2023.05.10 - [맥주/역사] - 맥주의 역사 ①

 

맥주의 역사 ①

맥주 공부를 위해 최근에 잘 읽지도 않는 책을 읽기 위해 리디북스도 가입해서 읽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제프 올워스의 [맥주 바이블]가 나온 지는 꽤 되었지만 내용이 굉장히 알차서 많은 공

keyid.tistory.com

 

 

처음 수천 년간 맥주를 만드는 방법에는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맥주의 역사에서 가장 큰 3가지 사건이 있는데,

1. 곡물 몰팅

2. 홉의 사용

3. 효모 작용에 대한 과학적 접근

이 중 곡물의 몰팅, 즉 곡물을 발아시켜 사용하는 것은 빨리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홉의 사용까지 수 세기가 걸렸다.

그 이유로는 굉장히 다양한 이유가 있는데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 이유들에 대해 정리해볼 예정이다.

 

먼저, 몰팅과 매싱(Malting and Mashing)은 전 편에서 적었듯 상당히 빠르게 사용되었다.

그리고 지역 별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종 허브와 향신료들을 첨가하기 시작했다.

이때 추가되는 것들 중 일부는 과일같이 당 성분을 넣어 개성있게 만든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맥주를 만드는 것은 집안에서 만드는 규모로

자급자족의 수준이었다.

게다가 금방 상하여 변하기 일쑤여서 수출은 커녕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기도 어려웠다.

이렇다보니 이 이상의 발전은 더딜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재 유명한 유럽의 맥주는 오히려 굉장히 늦게 발전해왔다.

브루잉 체계가 이집트 수준까지 수세기가 걸렸고 그 이상의 발전까지 또 수세기가 걸렸다.

유럽의 맥주 발전이 느려진 이유는 맥주를 낮게 보는 경향과 지방분권화 두가지로 본다.

당시 유럽은 종교의 영향으로 맥주보다는 와인을 발전시켜왔고 맥주를 미개한 술로 보았다.

이런 인식때문에 낮은 계급의 서민들이 주로 맥주를 즐겨마셨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위 계층의 귀족들도 맥주를 마시는 등 널리 퍼져나갔다.

기원전 700년까지는 맥주를 만드는 일은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집안일 중 하나였고 전문적으로 맥주를 만들어 파는 이들은 없었다.

이때 맥주를 만들던 이들은 주로 여성이었으며 전문적인 설비는 없었고

임시로 만든 설비로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중세시대까지 이어졌으며, 수도원이라는 존재가

유럽 전역에 퍼지기 시작하며 맥주의 발전이 서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수도원은 [베네딕트 규칙서]라는 규약에 의해 강제되었는데

수도원에 소속된 이들의 수행과 수도원의 운영에 대한 내용을 73장으로 구성한 서적이었다.

이 내용을 토대로 수도사들은 영적 수행의 일환으로 자립해야 했는데

그로 인해 수동원은 대규모 농장을 관리하며 자급자족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식량을 직접 재배하고, 다양한 요리와 함께 와인과 맥주까지 직접 만들어야 했다.

 

이 중 맥주는 당시 유럽의 식수 상태를 생각해보면 맥주는 식수로의 기능은 물론

방문객을 극진히 모셔야 하는(이 또한 규칙서에 적혀있다) 수도사의 역할에 따라 대접을 위함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수도원은 맥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특히 일반적인 농가의 서민들이 만드는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을 만들어야 하는 그들은

대규모로 맛을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해야했고, 이를 위한

전문 설비가 필요하게 되며 이에 대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맥주는 시간이 지나며 식수로 사용되는 등 유럽 전역에 그 영향력이 중요해졌다.

그러면서 맥주가 생활 필수품이 되자 맥주 제조 방식은 물론 세금도 법으로 정해진다.

신성로마제국이 유럽을 지배할 당시 브루어리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법으로

맥주에 사용하는 다양한 향신료의 판매를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었다.

이때 만들어진 개념이 그루이트Gruit로 맥주에 사용하는 각종 허브와 향신료를 의미한다.

즉, 국가가 그루이트의 판매권한을 가지게 되었고 이 권한을 그루이트레히트Gruitrecht라고 불렸다.

 

로마제국의 오토 2세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귀족은 물론 소도시들에게도 징세 권한을 부여했고,

이는 곧 국가가 판매하는 것들로만 맥주를 만들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법은 500년가까이 유지되며 맥주의 풍미를 브루어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중개인들(그루이트레히트를 얻은 사람)이 결정하게 되었고 이는 모두 세금을 걷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럼 홉은 언제부터 사용했는가?

800년대, 홉을 처음으로 맥주에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미 홉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으나 그 효능보다는 맛에 대한 것만 알고 있었다.

가장 확실한 기록으로는 프랑스 코르비 출신의 수도원장 아달하르도가 쓴 글에서 등장한다.

아달하르도가 작성한 글에는 다양한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그 중 맥주에 홉을 넣어 만들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이후 300년간 어떤 기록에도 맥주에 홉을 사용했다는 것이 없었고,

이후 베네딕트 수녀원장이었던 힐데가르트가 작성한 [신성한 자연학Physica Sacra]에서

"홉이 음료의 부패를 방지한다"라는 정보가 담겼다.

그 당시에 앞서 설명한 그루이트레히트가 있던 시대였으니, 판매하는 그루이트에 홉이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

주로 언급된 그루이트로 로즈말, 월계수잎, 들버드나무, 서양톱풀이 있는데

이 중 서양톱풀이 바로 지금도 야생 홉이라 불리는 식물이었다.

 

 

 

이 홉을 맥주에 사용하면서 두 가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각 맥주 양조장에는 각자 다른 레시피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홉의 발견으로

더욱 강한 도수를 가진 맥주를 만들 수 있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맥주의 유통기한이 크게 늘어나며 다른 지역으로 판매가 가능해졌다는 점이었다.

홉의 사용이 알려지기 전에는 모든 맥주들은 해당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으나

다른 지역으로 판매가 가능해지며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맥주를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물론 이 홉이 빠르게 퍼진 것은 아니다.

홉이 맥주의 재료로 전세계적인 표준이 된 것은 약 1800년대 이후이며

그 전까지만 해도 홉을 거부하는 국가*도 존재했다.

홉의 사용이 이리 오래 걸린 까닭이 바로 지방분권화였다.

그 전에 있던 맥주의 맛과 달리 씁쓸한 맛을 받아들이지 못한 지역도 있었고,

특정 지역에서는 유행하는 맛과 스타일이 존재했기에

이런 지역은 홉의 사용을 빠르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부패 방지와 산업화에 있어 홉의 사용은 혁신적인 변화였고

특정 지역에서 홉이 사용되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가장 늦게 홉을 받아들인 나라는 잉글랜드. 일부 지방에서는 홉의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홉이 사용되며 발전한 것이 맥주의 산업화였다.

맥주는 이미 전부터 인근 지역내에서 유통되며 부업으로써

아내들이 사용하던 돈벌이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맥주가 더 먼 지역까지 유통이 가능하게 되며 전문적인 산업화가 시작된다.

가장 처음 맥주를 다른 나라까지 판매하는데 성공한 곳은

지금의 독일북서부 지역에 해당하는 브레멘이었다.

 

 

독일의 브레멘

 

 

1200년경 브레멘에서 생산한 홉을 이용한 맥주는 북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1300년경이 되어서야 경쟁자인 함부르크가 브레멘을 앞질렀다.

이때 브레멘에서 만든 맥주와 사업화에 대해 지켜본 수많은 지역에서 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사용해본 홉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기에 초기에는 독일에서만

독점적으로 홉을 이용했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를 계기로 상업적으로 맥주가 크게 흥하기 시작했다.

1300년대 당시 연간 1000배럴 이상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가장 잘나가는 업자를 기준으로 두 배 이상 커진 규모라고 한다.

 

그리고 맥주를 원하는 다양한 나라에 판매하기 위해 선박 가득 맥주만 실어 보내기도 하고,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는 대형 브루어리들은

소형 브루어리들을 인수 합병하며 그 규모를 계속 키워나간다.

또 영향력이 커진 이들은 세금에 대한 내용도

본인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중세 말기에는 맥주가 유럽에 처음 온 시기의 그 위상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맛도, 품질의 균일함도 달라졌다.

기존의 향신료를 이용한 맥주와는 다르게 맛의 균형이 잡혀졌고

오래가면서 도수가 높은데 일관된 맛이 보장되는 기술까지 갖추게 되었다.

맛은 더 이상 달고 매콤하게 쓴 것이 아니라 홉 특유의 씁쓸한 맛과

균형잡힌 풍미가 맥주의 본질적인 특징으로 자리잡았다.